본문 바로가기
부자 생각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케인즈, 유명어록

by 생각의 열쇠 2022. 6. 11.
반응형
SMALL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케인즈, 경제 금융 지식 거점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케인스, 유명어록

-당신이 은행에서 100파운드를 빌린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다. 하지만 당신이 100만 파운드를 빌렸다면, 그건 이제 은행의 문제다. If you owe your bank a hundred pounds, you have a problem. But if you owe a million, it has.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자본주의는 가장 사악한 사람들이 공공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가장 사악한 행동을 하리라는 놀라운 형태의 믿음이다. Capitalism is the astounding belief that the most wickedest of men will do the most wickedest of things for the greatest good of everyone.


-그런데, 이와 같은 사태는 어느 정도의 개인주의(個人主義)와 완전히 양립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 이자 생활자들의 안락사(安樂死)를, 또 따라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자본가의 누적적인 압력이 안락사당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사상은 옳든 다르든 일반인들의 상상과는 달리 훨씬 더 막강하다. 세상은 이들에 의해 지배된다. 그리고 어떤 지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가들조차도 대개는 죽은 경제학자들의 노예에 불과하다.


-정부가 낡은 병에 돈을 가득 채워 넣은 후 그것을 어느 폐광에다 묻어두고는, 기업자들에게 마음대로 그 돈을 파 가도록 내버려 둔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부터는 모두 그 돈을 파내기에 혈안이 될 터이므로 실업이 줄어들고, 실질소득과 부도 증가할 것이다. 물론 이 방법보다는 그 돈으로 주택을 짓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렇지만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가격이 신축적이라 주장하는 고전파 이론은 경제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당위를 설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실제와 당위를 혼동하기 시작하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당신이 은행에서 100파운드를 빌린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다. 하지만 당신이 100만 파운드를 빌렸다면, 그건 은행의 문제다. If you owe your bank a hundred pounds, you have a problem. But if you owe a million, it has.
-정부 기능의 확대는 자유방임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지지한다.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케인스, 재미있는 여담

-성적 성향이 양성애자였다고 해요.

-특이한 입술 모양 때문에 별명이 오리주둥이였다네요. 

-엄청난 메모광으로 거의 병적 수준으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계단의 숫자를 센다든지, 먹은 음식 개수나 남은 음식 개수를 세기도 하고 몇 년 동안 섹스한 횟수를 모두 기록해 두기도 하였다니 놀랍네요!

-경제학에 흥미를 붙일 무렵 친한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다고 해요. '어쩌면 나는 경제학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막 저술할 무렵에는 친구에게 '내가 요즘 시간을 좀 보내려고 책을 한 권 쓰고 있네.'라는 글의 편지를 보내는 등 우리로선 놀라운 겸손의? 발언이 아닐 수 없네요!

-케인스는 키가 무료 2m에 육박할 정도로 키가 컸었는데요, 연하의 발레리나였던 리디아 로포코바와 42살에 결혼했지만 안타깝게도 불임이었기에 결국 자녀를 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무용수였는데 그녀는 케인스가 죽고 나서도 재혼하지 않고 30년을 넘게 더 살았다고 해요.

-남동생이 조르리 케인스는 찰스 다윈의 손녀와 결혼하여 꽤 많은 자녀를 두었기에 영국의 케인스 가문 사람들은 다 졸 케인스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졸 케인스는 의사이자 작가였는데 작위를 받을 정도로 대성하기도 하였다고 해요.

-특별한 점은 경제학자 중 드물다는 주식투자로 크게 성공한 인물로도 유명하다고 하네요. 확실히 케인스가 천재적인 면이 있었던 듯합니다.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도 120%의 소득을 올렸다고 하니 정말 통찰력이 대단한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주식투자에서 대박을 크게 치는 경우는 드문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케인스의 앞세대 경제학자인 어빙 피셔는 1920년대에 경제학 지식을 바탕으로 주식시장의 큰손이 되어 “주식시장은 앞으로 꺼지지 않는 영원한 고점에 도달했습니다.”라는 발언하며 주가가 여전히 오를 것이라는 예측만 했다가 막상 손절 타이밍을 잡지 못해 결국 본인의 모든 재산과 집은 물론, 명성마저 날려 먹고 엄청난 비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다고 해요. 이렇듯 힘든 주식시장을 두고 성공한 케인스에게 주식투자에 어떻게 성공했냐는 질문에 "중간의 중간을 선택하세요."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나름 유명합니다.

-참고로 케인스는 상류층이기는 하였으나 딱히 상속받은 재산은 없었다고 하네요.

-주식투자가들에게 유명한 그의 투자이론은 1936년 발간된 출간된 그의 12장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미인 선발대회의 비유는 2013년 수능 특강 영어 B에 지문으로 제시되기도 하였었어요. 그것은 주식투자는 미인선발대회와 같다는 것이에요. 그에 의하면 투표로 미인을 뽑는 미인선발대회에서 선발되는 미인은 투표자 자신이 가장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대체로 투표자의 평균 선호에 가장 가까운 여인이 미인으로 최종 선발되게 되고 결국 이는 투자자 개인이 생각하기에 이익을 낼 것 같은 종목이 아니라 시장 주도주나 인기주에 투자하라는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관련된 뒷얘기로는, 사실 케인스의 주식 투자 성공 비결은 미인대회 이론 이딴거 없고 그냥 발레리나 출신 아내가 짚어준 종목을 그냥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하네요. 결론적으로 이 소문이든 저 소문이든 사실상 주식 투자를 위한 각종 분석 및 연구가 별로 소용없다는 주장의 예시로 자주 쓰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기의 대결 케인스 vs 하이에크 둘은 사상적으로는 대립하긴 했지만 친한 사이였다고 하는데요, 하이에크는 케인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였어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 저는 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더 비참했을 거예요. (Keynes Hayek: The Clash That Defined Modern Economics, By Nicholas Wapshott)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와 경제부흥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두 거물이 만났을 때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는데 케인스가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면 경제를 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회고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그는 경제학자라기보단 수학자 같았다'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케인스가 조언을 자주 해주기도 하였다고 하네요.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가 한때 길렀던 강아지의 이름이 케인스였다고 하네요.

-케인스는 경제학자로서 가장 유명하지만 아이작 뉴턴에 대한 조명의 선두 주자이기도 했는데요. 그는 경매에 나온 아이작 뉴턴의 미출간 저작을 구매하여 읽을 정도로 뉴턴에 관해 관심이 지대했다고 해요. 그의 거의 모든 자료를 검토한 끝에 케인스는 "뉴턴은 이성의 시대를 연 최초 사람이라기보다는 최후의 마법사, 마지막 바빌로니아인이자 수메르인, 약 1만 년 전에 인류의 지적 유산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던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가시적이고 지적인 세계를 바라보았던 마지막 위대한 정신."이라는 굉장히 멋진 포장의 말로 뉴턴을 평가할 만큼이요. 실제로도 뉴턴은 연금술과 신학 연구에 물리학 이상의 노력을 투입하기도 하였어요. 그리하여 20세기에 재평가되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연금술사, 신비주의자로서의 뉴턴의 이미지는 바로 케인스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네요.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의 책에서 경제학자라는 이야기는 일절 없이 '전기작가' 정도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과학사나 수학사 관련 서적에서 뉴턴을 "최후의 마법사"로 칭하는 것은 케인스의 영향 때문에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