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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생각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케인즈 총정리1

by 생각의 열쇠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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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니, 거시학이니, 미시학이니, 케인스? 케인즈?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도대체 케인스가 누구야?

존 메이너드 케인스(J ohn Maynard Keynes, 1883년 6월 5일~1946년 4월 21일)

케인스는 거시 경제학과 경제 정책 분야를 통틀어 기존의 이론과 관습들을 변화시킨 영국경제학자이자 경제학의 대표 인물이다. 1883년 6월 5일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으며, 이튼을 거쳐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공부하고, 성적이 좋아 수학과 우등시험에서 12등으로 합격했다. 졸업한 후에는 한 때 인도 성에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대학으로 돌아와 금융론을 강의하게 되었고, 그 후로 약 20년간은 앨프리드 마셜의 충실한 후계자로서 아서 세실 피구와 더불어 케임브리지학파의 쌍벽을 이루었다. 또 Royal Economic Society의 서기로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Economic Journal의 명 편집자로서 Economic Journal 잡지를 세계적 권위의 경제학 잡지로 육성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케인스는 '케인스 경제학'이라는 이전의 학설들을 토대로 독창적인 자신만의 이론을 창시해 경기후퇴에 대해서 재정정책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케인스는 1930년대에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흔히 일반이론이라 불리는) 책을 발표하였는데 이 책은 기존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시장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유효수요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 서양 국가들은 케인스의 경제정책을 채택하기도 했다. 후에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그의 추종자들이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사실상 케인스의 이론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에는 석유파동이 일어나는 등 세계경기가 심각한 침체에 이르게 되기도 하였는데 그 해결책으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밀턴 프리드먼 등)의 새로운 이론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케인스 학파의 영향력이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7~2010년 금융위기 사태와 함께 신자유주의 노선이 쇠퇴하게 되면서 케인스의 경제학은 다시금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케인스의 이론들은 훗날 케인스 경제학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거시경제학파 학자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명으로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경제학자로서 들어 보일 아버지라 할 만큼 인정받고 있다. 케인스의 등장 이전에는 사실 애덤 스미스라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있었는데 잠깐 그 부분을 알고 넘어가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대표적인 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판한 1776년 이후부터 경제학이 체계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판할 당시만 해도 개인들의 경제적 자유는 현대 사회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고 있었다. 국가에서는 세금이나 수출입 규제 등을 체계적인 이론 없이 자의적으로 거둬들이는 등 국가가 개인의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었다. 이에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보다 자율적인 조정 능력을 강조하면서 개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굳이 국가가 개인의 경제 활동에 무 개입해도 시장에서는 가격 조정 등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저절로 이룬다는 주장 말이다. 이런 시장의 기능을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분업에 대한 이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노동가치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를 밀, 토마스 맬서스, 카를 마르크스 등이 애덤 스미스를 계승하여 가치론과 분배이론, 국제 무역에 대한 설명 등을 덧붙였다.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이 방법론상의 큰 변화를 겪은 것은 한계 효용 학파의 등장 이후인데, 한계 효용 학파는 물리학과 미적분을 사용하여 수학적인 모형을 개발하였다. 일반적인 모형이 연구된 것이다. 바로 현대의 주류가 되는 경제학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정착한 것이 한계효용학파 이후라고 볼 수 있다. 한계 효용 학파 이전에는 수학적 설명이 제한적이었고 많은 부분 말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는 한계 효용이 한계 비용과 같아지는 지점을 선택하며 이 원리는 현대에도 많은 경제 모형의 결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리이다. 

거시경제의 아버지, 케인스의 등장!

한계효용학파의 시대가 도래한 그 시대 무렵, 1903년에 앨프레드 마셜이 케임브리지 대학에 경제학과를 최초로 개설하게 되었다. 이때 앨프레드 마셜의 제자이자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국가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설명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훗날 현대 경제학에서도 사용되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 등 경기 부양정책의 기초적인 논리를 정립하는 역사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그는 경기 불황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한 경제학자이기도 한데 이 부분에서 애덤 스미스의 주장과 조금 차이가 있다.

 

How can I accept a doctrine which sets up as its bible, above and beyond criticism, an obsolete text-book which I know to be not only scientifically erroneous but without interest or application for the modern world? How can I adopt a creed which, preferring the mud to the fish, exalts the boorish proletariat above bourgeois and the intelligentsia who, whatever their faults, are the quality in life and surely carry the seeds of all human advancement? Even if we need a religion, how can we find it in the turbid rubbish of the red bookshop? It is hard for an educated, decent, intelligent son of Western Europe to find his ideals here, unless he has first suffered some strange and horrid process of conversion which has changed all his values.

어떻게, 과학적으로 틀렸을 뿐만 아니라 흥미도 현대 세계에의 실용적 가치도 없는 한물간 책 따위를, 그 한심한 교리를 어떤 비평을 초월하여 성경처럼 떠받들 수 있겠는가? 어떻게 촌티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 계급(여러 오점을 제쳐 두더라도 결국 삶의 질을 높여주었으며, 인류 발전의 밑바탕이 될 계급들)보다 높게 보라는, 물고기보다 흙탕물을 선호하라는 그런 한심한 교리를 받아들이란 말인가? 설령 우리에게 어떤 신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빨간 서점의 혼탁한 쓰레기 속에서 찾을 것인가? 서유럽의 교육받고 품위 있으며 지적인 어떤 젊은이가 이런 곳에서 이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젊은이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어떤 지독한 종교적 개종에 시달리지 않는 한 말이다.
- Keynes, John Maynard (1931). Essays in Persu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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